사내는 에레크 명장의 면전에 대고 거슬릴 만큼 큰 소리로 웃어대기 시작했다. 사내의 친구들 또한 사내와 함께 웃어댔다.
“제가 찾는 건 사창가가 아닙니다,” 언짢아진 에레크 명장이 대답했다. “한 여인을 찾고 있어요, 여기서 일하는.”
“여관 주인의 하녀를 찾는 거군,” 거구의 술 취한 한 사내가 저 멀리서 대답했다. “아마 저 뒤에서 바닥을 닦고 있을 거요. 안됐지, 여기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내 무릎 위에!”
술집에 있던 모든 사내들이 사내의 농담에 정신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에레크 명장은 그러한 생각만으로도 화가 치밀었다. 그녀에게 부끄러웠다. 그녀가 이러한 형편없는 사내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경멸스러웠다.
“그쪽은 뉘신지요?” 멀리서 다른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다른 사내들보다 눈에 띄게 체구가 건장하고 짙은 수염에 짙은 눈빛을 지닌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얼굴 가득히 인상을 쓰고 단단한 턱이 눈이 뛰었다. 그는 지저분해 보이는 여러 명의 사내들을 대동하고 있었다. 그는 근육이 가득한 거구로 에레크 명장에게 위협적으로 다가갔다. 분명한 시비였다.
“내 하녀를 뺏어가려는 거요?” 사내가 말했다. “그럼 한번 겨뤄보시지!”
사내는 더욱 가까이 다가가 에레크 명장의 멱살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오랜 훈련을 수행한 왕국 최고의 전사인 에레크 명장은 사내가 상상조차 못한 반응을 보여줬다. 사내가 에레크 명장에게 손을 대려는 순간, 명장은 순식간에 그의 손목을 쥐고 번개처럼 사내를 뒤집어 그의 뒷덜미를 움켜쥐고 저 멀리 날려버렸다.
거구의 사내는 마치 포탄처럼 날아가 주변에 있던 무리들과 섞여 볼링 핀처럼 바닥을 뒹굴었다.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두 사람에게 시선이 집중되며 술집은 적막에 휩싸였다.
“싸워라! 싸워라!” 취객들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정신을 못 차리던 여관 주인은 고함을 외치며 에레크 명장에게 달려들었다.
에레크 명장은 더 이상 인내하지 않았다. 명장은 앞으로 나서 한쪽 팔을 들어 팔꿈치로 여관 주인의 얼굴을 가격해 코뼈를 부러뜨렸다.
여관 주인은 비틀거리며 뒷걸음치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에레크 명장은 여관 주인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켜 세운 뒤 거구의 체격을 아랑곳하지 않고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명장은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가 치켜 든 여관 주인을 허공으로 던졌고 여관 주인은 그렇게 허공을 갈라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술집에 있던 모든 사내들이 이야기를 멈추고 그대로 굳었다. 적막이 흘렀고 모두가 에레크 명장이 예사 인물이 아니란 걸 알아챘다. 순간 술집의 바텐더가 술병을 머리 위로 들고 민첩하게 에레크 명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급습을 간파한 에레크 명장은 이미 검을 뽑기 위한 준비를 했으나 명장이 검을 채 뽑기도 전에 브랜디트가 앞으로 나서 허리에서 단검을 뽑아 달려오는 바텐더의 목을 겨눴다.
바텐더는 자신을 겨눈 단검 앞에서 그대로 굳었다. 조금만 더 움직였더라면 칼날이 살을 파고들었을 게 분명했다. 바텐더는 그렇게 공포에 질려 눈을 부릅뜨고 땀을 흘리며 한 손에는 병을 쥐고 멈춰있었다. 그렇게 술집 안은 침묵이 흘렀고 너무나 고요해 저 멀리서 못이 떨어지는 소리가 생생하게 울려 퍼졌다.
“병을 내려 노시오,” 브랜디트가 명령했다.
바텐더는 브랜디트의 말에 따라 술병을 바닥에 던졌다.
에레크 명장은 칼날이 칼집에 부딪히는 금속 소리와 함께 검을 빼 들어 여관주인에게 다가갔다. 여관 주인은 여전히 바닥 위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고 명장은 그의 목에 칼끝을 겨눴다.
“두 번 이야기하지 않겠다,” 에레크 명장이 입을 열었다. “여기 쓰레기 같은 인간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거라. 당장. 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길 바란다. 단 둘이서.”
“공작이다!” 누군가가 외쳤다.
술집의 모든 사람들이 공작이 있는 쪽을 바라봤고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술집으로 들어서는 공작을 한눈에 알아봤다. 모두가 서둘러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여 예를 갖췄다.
“내 말이 끝나기 전에 이곳을 나가지 않는다면,” 공작이 말을 이었다. “여기 남은 모든 자를 구금할 것이다.”
순식간에 술집은 광란에 빠졌다. 술을 마시던 사내들은 일제히 서둘러 입구 앞에 서있는 공작을 지나쳐 술집 밖으로 빠져나갔다. 마시던 술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자네도 나가시게,” 브랜디트가 겨누던 칼끝을 내리고 바텐더의 머리를 붙잡아 술집 밖으로 내던지며 말했다.
소란스러웠던 실내가 이제는 고요해졌다. 술집에는 여관주인을 비롯해 에레크 명장, 브랜디트, 공작과 열 두 명의 공작 수행원이 남아있었다. 수행원들은 철커덩 소리를 내며 술집 문을 내렸다.
에레크 명장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며 바닥에서 코피를 닦고 있는 여관 주인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웠고 여관 주인을 그의 뒤에 있는 벤치 위에 앉혔다.
“당신이 내 장사를 망쳤소,” 여관 주인이 불평했다.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오.”
공작이 앞으로 나와 허리를 굽혀 여관 주인을 마주봤다.
“자네가 이 젊은이에게 손을 대려 한 것만으로도 난 자네를 처형할 수 있네,” 공작이 여관 주인을 책망했다. “이 사람이 누구인 줄 아는가? 에메크 명장일세, 왕의 최정예 기사이자 최고의 실버 전사이지. 에레크 명장이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자네를 없앨 수 있네.”
여관 주인은 고개를 들어 에레크 명장을 바라봤다. 그는 처음으로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고 제 자리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제가 몰라봤습니다. 뉘신지 말씀을 안 해주셨잖아요.”
“그녀는 어디 있는가?” 에레크 명장은 급한 마음에 여관 주인을 다그쳤다.
“저 뒤에서 주방을 청소하고 있습니다. 제 하녀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요? 뭘 훔치기라도 했나요? 쟤는 그저 제가 고용한 하녀일 뿐입니다.”
에레크 명장은 단검을 꺼내 여관 주인의 목을 겨눴다.
“다신 한번 그녀를 ‘하녀’라고 불러보게,” 에레크 명장이 경고했다. “그럼 네 목을 잘라버리겠네. 알겠는가?” 명장이 여관 주인에게 칼끝을 겨누며 단호하게 명령했다.
여관 주인은 울음을 터뜨리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서둘러 이곳으로 데려오거라,” 에레크 명장이 여관 주인의 발을 차며 뒷문 쪽을 향해 그의 등을 떠밀었다.
여관 주인이 서둘러 자리를 떠나자 주방 쪽에서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고 소리 없는 다그침이 들려왔다. 얼마 후, 주방 문이 열렸고 보잘것없는 넝마로 만든 원피스에 주방 기름을 잔뜩 묻힌 하녀 여럿이 걸어 나왔다. 60대쯤으로 보이는 세 명의 여성이었다. 에레크 명장은 자신이 말한 여인이 누구인지 여관 주인이 알긴 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곧, 세 명의 하녀 뒤로 그녀가 뒤따라 걸어 나왔다. 순간 에레크 명장은 심장이 멎는 듯 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가 찾던 그녀였다.
기름때가 가득 묻은 앞치마를 두른 그녀는 고개를 들기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머리는 뒤로 묶어 천으로 감싸여 있었고 양 볼은 그을음이 묻어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에레크 명장은 그녀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녀의 피부 결은 아이처럼 티없이 맑았다. 뺨이 높고 턱이 가늘며 작은 코 위로는 주근깨가 보였고 입술은 도톰했다. 넓고 기품 있는 이마 위로 아름다운 금발 머리가 보닛 밖으로 빠져 나왔다.
그녀는 잠시 에레크 명장을 힐끗 바라봤고 그 덕분에 보석같이 아름다운 엷은 황록색 눈동자가 불빛에 비춰 크리스탈 푸른 빛으로 반짝였다. 이 모습을 바라본 에레크 명장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에레크 명장을 지금 이 순간 그녀를 처음 봤던 그 때보다 더욱 그녀에게 매료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뒤로 여관 주인이 인상을 쓰며 여전히 흐르는 코피를 닦으며 걸어 나왔다. 그녀는 조용히 앞으로 걸어 나와 에레크 명장 앞으로 먼저 나와있던 노년의 여성들에게 둘러 쌓였다. 에레크 명장은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무릎을 구부려 인사를 건넸다. 공작이 대동한 수행원들과 함께 에레크 명장은 그녀 앞에 다가가 그녀를 마주봤다.
“주군,” 그녀의 부드럽고 달콤한 음성이 에레크 명장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제가 주군께 어떤 무례를 저질렀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제가 공작님의 궁궐에 들어가 주군께 실례를 범한걸 용서해 주십시오.”
에레크 명장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어투와 어조, 음색을 듣자 마음이 놓였다. 그녀가 끊임 없이 속삭여주길 바랬다.
에레크 명장은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와 눈을 맞추기 위해 부드럽고 자상하게 그녀의 턱을 치켜 세웠다. 그녀의 눈을 보고 있자니 심장이 요동치는 듯 했다. 푸른 빛 바닷물 속에서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가씨, 아가씨가 제게 무례를 범한 건 없습니다. 아가씨가 결코 제게 무례를 범할 일을 없을 듯 합니다. 저는 누군가를 질책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닙니다, 사랑에 끌려 왔습니다. 아가씨를 본 순간부터 아가씨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황급히 시선을 아래로 옮겼고 몇 번이나 눈을 깜박거렸다.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듯 그녀는 양 손을 이리저리 잡아당겼다. 분명 이런 일이 처음인 듯 보였다.
“말해주십시오, 아가씨. 성함이 어찌 되시나요?”
“알리스테어 입니다,” 그녀의 어조가 겸손했다.
“알리스테어,” 그녀의 어조에 압도당한 듯, 에레크 명장은 그녀의 이름을 되새겼다. 그가 들어본 이름 중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었다.
“그러나 저는 왜 주군께서 저를 궁금해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부드러운 음색으로 말을 이었다. “주군께서는 귀족이십니다. 허나 저는 하녀일 뿐입니다.”
“내 하녀지요, 정확히 말하자면,” 여관 주인이 앞으로 나서며 심술궂게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쟤는 저에게 고용됐습니다. 계약서에 서명을 했습니다, 몇 년 전에요. 7년 동안 하녀로 일하기로 약속했지요. 그 대가로 저는 음식과 머물 곳을 제공하고요. 이제 삼 년 지났습니다. 그러니 보시다시피 시간 낭비 하시는 겁니다. 쟤는 제 소유물입니다. 제 하녀에요. 주군께서는 데려가실 수 없습니다. 제거니까요. 아시겠습니까?”
에레크 명장은 그 동안 그 누구에게도 품지 않았던 경멸감을 여관 주인에게 품었다. 한편으로는 당장이라도 검을 꺼내 여관 주인의 심장을 찔러 이 자리에서 그를 없애고 그와 그녀의 계약관계를 종료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 자가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이든 상관없이, 에레크 명장은 왕의 법규를 어기고 싶지 않았다. 어찌됐든, 에레크 명장의 행동 하나하나가 왕권을 반영했기 때문이었다.
“법은 법이지,” 에레크 명장이 단호하게 여관 주인에게 대답했다. “법을 어길 생각을 없네. 다만, 내일 마상경기가 열리네. 여느 사내들과 같이 그곳에서 우승하면 난 내 신부를 고를 수 있지. 그리고 난 알리스테어 아가씨를 선택하겠다고 미리 말해두겠네.”
술집 안에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 말을 잇지 못한 채 서로의 얼굴만 바라봤다.
“그건,” 에레크 명장이 말을 이었다. “ 만약 이 아가씨가 허락을 해 준다면 말일세.”
에레크 명장은 알리스테어를 바라봤다. 여전히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그녀의 모습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의 시선에 수줍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이 들어왔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아가씨?” 에레크 명장이 물었다.
모두가 숨을 죽인 순간이었다.
“주군,” 알리스테어가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주군께선 제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이곳에 왜 왔는지 알지 못하십니다. 송구스럽지만 전 이 모든 것들을 주군께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에레크 명장은 알리스테어를 바라보았다.
“왜 말해줄 수 없는 것이오?”
“이곳에 온 이후로 그 누구와도 제 얘기를 나눈 적이 없습니다. 맹세를 했지요.”
“그렇지만 왜요?” 에레크 명장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알리스테어를 재촉했다.
그러나 알리스테어는 말 없이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사실입니다,” 나이 많은 하녀가 대신 대답했다. “이 아이는 자신이 누구인지 한번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또는 왜 이곳에 왔는지 도요. 대답을 안 해요. 지난 몇 년간 계속 물어봤었는데도요.”
에레크 명장은 그녀의 이야기에 크게 당황했다. 결국 알리스테어에 대한 의문만 커질 뿐이었다.
“만일 아가씨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면, 굳이 묻지 않겠습니다,” 에레크 명장이 말했다. “아가씨의 맹세를 존중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가씨에 대한 제 마음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아가씨, 당신이 누구이든 제가 내일 개최되는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우승의 대가로 아가씨를 선택하겠습니다. 이 왕국 전체에서 그 누구도 아닌 아가씨를요. 다시 한번 여쭈겠습니다. 허락 해주시겠습니까?”
에레크 명장은 시선을 떨구고 있는 알리스테어의 모습을 바라봤다. 그녀의 두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순간 그녀는 뒤돌아 주방을 향해 술집을 빠져나갔다. 그녀가 들어왔던 문으로 급하게 나간 뒤 등뒤로 문을 닫아버렸다.
에레크 명장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영문을 몰라 말을 잇지 못했다. 에레크 명장은 그녀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할 뿐이었다.
“봤지요, 시간만 낭비했군요, 쟤는 제겁니다.” 여관 주인이 입을 열었다. “쟤는 싫다고 했습니다. 이제 나가세요.”
에레크 명장을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싫다고 말한 적이 없네.” 브랜디트가 끼어들었다.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지.”
“그녀는 시간이 필요한 것일 거요,” 에레크 명장이 알리스테어를 변호했다. “누가 뭐라 해도 심사 숙고해야 할 일이니까. 그녀는 또한 날 잘 알지도 못하지 않소.”
에레크 명장은 그 곳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늘밤 이곳에서 머물겠네,” 에레크 명장이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자네는 내게 방 하나를 내주시게, 그녀의 방 가까이로. 내일 아침 경기 시작 전에 그녀에게 다시 한번 허락을 구해볼 것이네. 그녀가 허락하고 내가 우승한다면, 나는 그녀를 아내로 맞이할거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자네가 그녀와의 노예계약을 파기하도록 자네에게 돈을 지불하고 그녀와 함께 이곳을 떠나겠네.”
여관 주인은 한눈에 봐도 에레크 명장이 하룻밤을 그의 여관에서 보낸다는 사실에 불만이었지만 감히 그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는 빠르게 주방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등뒤로 문을 쾅 하고 닫아버렸다.
“정말 이 곳에 머무를 생각인가?” 공작이 물었다. “우리와 함께 궁전으로 돌아가게나.”
에레크 명장은 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제 생에 이보다 더 확신을 가진 일은 없습니다.”
제8장
토르는 허공을 갈라 얼굴을 수면으로 향하고 휘몰아치는 불의 바다 속으로 다이빙했다. 바닷물 속으로 깊이 잠수한 토르는 이내 수면 위로 고개를 들었고 뜨거운 바닷물의 감촉을 온 몸으로 느꼈다.
토르는 잠시 바닷물 속을 들여다봤고 이내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알 수 없는 온갓 종류의 크고 작은 괴상한 생김새의 바다 괴물이 시야 속에 들어왔다. 바다 생물로 가득한 바다였다. 보트로 안전하게 이동할 때까지 바다 괴물의 공격이 없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다.
토르는 다시 수면 위로 올라 숨을 들이쉬며 물에 빠진 부대원을 찾았다. 때마침 물에 빠진 부대원이 허우적거리다 기력을 잃고 물 속으로 가라앉는 찰라 토르는 부대원을 발견했다. 몇 초만 늦었더라도 그는 그대로 익사했을 게 분명했다.
토르는 부대원에게 다가가 그를 붙잡은 뒤, 두 사람 모두 수면 위로 고개를 들어 숨을 쉴 수 있도록 한쪽 팔로 뒤에서 그의 쇄골을 감고 헤엄치기 시작했다. 가까이에서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려 주변을 돌아보니 놀랍게도 크론이 보였다. 크론이 토르를 쫓아 바다 속으로 따라 들어온 게 분명했다. 작은 표범은 토르 옆에서 칭얼거리며 열심히 헤엄을 쳤다. 토르는 위험을 감수하며 자신을 쫓아온 크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한 손에는 부대원을 붙잡고 한 손은 헤엄을 쳐나가야 했기에 크론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붉은 소용도리가 치는 물살이 험했고 괴상한 생물체들이 토르 주변에서 수면 위로 몸을 내밀었다 이내 사라졌지만 토르는 주변 환경에 최대한 마음을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4개의 다리와 두 개의 대가리를 가진 흉악한 생김새의 보라 빛 바다괴물이 토르 가까이에서 모습을 보이며 쉭쉭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에 토르는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토르의 시선은 20미터 거리에 있는 보트를 향했다. 한 손에는 부대원을 이끈 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맹목적으로 헤엄쳤다. 부대원은 온 몸을 마구 뒤틀며 소리를 질러댔고 이에 토르는 두 사람 모두 그대로 물 속에 잠겨버릴 지도 몰라 불안했다.
“가만히 좀 있어!” 토르는 부대원이 잠잠해지길 간절히 바라며 거칠게 소리질렀다.
마침내 부대원이 잠잠해지자 토르는 잠시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내 바로 옆에서 커다란 물살이 일어나는 소리에 토르는 고개를 돌렸다. 또 다른 바다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 개의 촉수를 지닌 작은 노란색 생명체였다. 대가리가 사각형인 모습이 눈에 뛰었다. 바다 괴물은 토르를 향해 으르렁거리며 돌진했다. 대가리가 각지지만 않았다면 바다에 사는 방울뱀이라 착각했을 정도로 모습이 흡사했다. 근접하는 바다 괴물을 보며 토르는 몸을 감쌌다. 그러나 바다 괴물이 자신을 물 거란 예상과 달리 바다 괴물은 아가리를 크게 열어 토르에게 바닷물을 쏟아냈다. 토르는 물살에 감겼던 눈을 뜨며 시야를 확보했다.
바다 괴물은 그렇게 토르 주변을 에워싸고 이리저리 헤엄쳤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토르는 더욱 사력을 다해 헤엄쳐나갔다.
진전이 보였다. 토르는 보트에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때마침 또 다른 바다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얇고 긴 주황빛을 띠는 형상에 아가리에는 날카로운 두 개의 송곳니가 나 있었고 12개의 작은 다리가 뻗어있는 생명체로, 뒤로는 기다란 꼬리를 사방으로 휘감고 있었다. 마치 정면으로 서있는 바다가재 모습을 닮아 있었다. 바다 괴물은 물 곤충처럼 물가를 따라 토르 가까이 다가와 몸을 돌리며 꼬리를 휘저었다. 꼬리가 토르의 한쪽 팔을 스치며 토르의 팔을 휘갈겼고 그와 동시에 꼬리에 붙은 촉수가 토르의 팔을 그대로 파고들어 토르는 커다란 고통을 토로했다.